여행일지(2010)/아메리카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산 속에서 걷다가 맞이한 새해

Ryan.Lee 2012. 4. 13. 06:44

2010.12.30 ~ 2011.01.03


한국을 떠난지 거의 9개월이 다 되어가고 이제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만 다녀오면 남미에서의 굵직한 일정은 끝이 난다.

산티아고(Santiago)에서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까지 버스로 이동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기에 항공권을 현지에서 구매했다.

Sky Airlines 으로 편도 약 18만원정도에 끊었다.

푼타 아레나스에서는 바로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eles)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5000페소)

숙소는 Nataly Hostal에 묶었는데 주인도 친절하고 시설도 괜찮았다. (5000페소/일)

다음 이동 도시인 칼라파테(El Calafate)까지 버스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타기 어려우니 미리 예약하고(11000페소)

토레스 델 파이네행 왕복 버스비도 같이 구입했다. (13600페소)

버스를 여행사 통해서 구했는데 학생 할인해달라고 조르면, 재량껏 깎을 수 있다.

우리는 4박 5일 일정으로 트레킹 할 일정이라 미리 해먹을 식량과 텐트 등 필요한 걸 구입, 대여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Parque Nacional Torres del Paine 입구에 도착했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15000페소 (2010년 12월)

가장 많이 하는 W트레킹으로 4박 5일 일정으로 잡았다. 3박 4일에도 하는데 넉넉하게 다녀오려고 하루 추가했다.

(나중에 생각했는데 3박 4일에 했으면 정말 정신없이 하루종일 걸었어야 했다. 안그래도 그랬는데..)

지도에 표시한 것처럼 W모양으로 트레킹을 해서 W트레킹이라 부르는데

내가 다녀온 루트와 반대로 Grey빙하 쪽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1 DAY

Porteria y Guarderia Laguna Amarga ~ Hotel Las Torres (7.5km) ~ Campamento Chileno (5.5km) ~ Campamento Torres (4.9km)

총 이동거리 약 18km

첫 날부터 많이 걸어야 했다. 저 산 속 어딘가에 우리 목적지가 있다.

당일 투어로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 투어로 가면 차로 갈 수 있는 한에서만 보기때문에 토레스 델 파이네를 온전히 보긴 힘들다.

대신 트레킹시 따로 가기 힘든 Grande 폭포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여기가 2600m인가 보다. 이정도는 높이도 아니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이 2천미터도 안되는데

남미는 이정도가 기본이다. 뭐 이 두배 이상도 갔다왔는걸 흑흑

아침에는 아직 안개가 껴있어서 봉우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슬슬 해가 뜨고 날도 맑아지고

드디어 목적지..가 아닌 잠깐 쉬어갈 곳에 왔다.

점심으로 가져온 샌드위치를 하나씩 먹고, 오늘 먹으려고 가져온 냉동식품도 간단히 조리해먹었는데 도저히 먹을 맛이 아니었다.

무슨 생밀가루도 아니고, 캠핑하면서 음식도 아껴먹어야하는데 이건 도무지..그래도 꾸역꾸역 어느정도 먹고.

다시 이제 저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꺄오!!!

토레스 델 파이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10곳에 선정한 곳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정말 남미에 왔으면 꼭 한번은 해봐야 할만한 트레킹이다. 마치 거대한 국립공원에 수많은 그림작품들을 걸어놓은 것 같다.

저기 조그맣게 보이는 산등성이로 난 길을 따라 가야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는 다양한 식생들을 볼 수 있다.

해가 중천을 한참 넘었는데 이제 절반 조금 넘게 왔다. 지금까지 온 길은 경사가 높은 산행이 대부분이라 다들 금방 지쳤다.

게다가 트레킹 첫날이라 5일치 식량도 배낭에 지고 있어 무게가 더한 것 같다.

따뜻한 차 한잔 끓여마시고 다시 출발!

때마침 말들도 어딘가로 향하고 우리들도 서둘렀다.

귀여운 폭포

그렇게 한참을 걸어 해가 거의 질때쯤 도착했다. 이 표지판을 봤을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토레스 델 파이네를 대표하는 세개의 탑을 보러가는 전망대까지는 45분이 걸린다기에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바로 텐트치고 내일 아침 이른 기상을 위해 휴식 !


2 DAY

Campamento Torres ~ Mirador Las Torres (2km) ~ Campamento Torres (2km) ~ Refugio y Campamento Los Cuernos (16km)

총 이동거리 약 20km

텐트 사이사이로 캠핑장을 빠져나가면

이렇게 전망대로 가는 길이 나온다.

짐은 전부 텐트에 두고 몸만 와서 조금 험한 돌길이 나와도 문제없이 날라다녔다. 바람은 정말 세게 불었지만 말이다.

오오, 드디어 세개의 탑 등장!

내가 갔을때는 여름일때라 이런 모습인데 겨울에 오면 호수도 얼고 눈이 내려 색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아무렴 어때, 역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대표한다는 말처럼 장관이었다.

사진으로만 말하기가 미안할 정도이다.

이제 충분히 봤으니, 갈 길이 멀어서 서둘러 내려왔다.

어제 본 Campamento Chileno이다. 빠르게 패스!

자, 이제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쭉 가면된다. 지도 한 장만 보고 얼마나 걸릴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는데,

멀리 떨어진 캠핑장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하,,이때는 마냥 좋았는데.

이상하게도 분명히 제대로 된 길을 따라 가고 있는데, 우리 말고는 가는 사람이 없었다.

반대방향에서 오는 사람들도 없었고, 오늘은 쉬는 날인가? 31일이어서 그냥 안 움직이고 다들 쉬고 있나?

문제는 다른데에 있었다. 다들 미리 알고 다른 길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 많은 비가 내려 개울가 물이 많이 불었다.

지도를 보면 없어야할 곳에 개울이 있고, 다리도 없어 여러번이나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너야 했다.

근데 갈수록 물도 깊고 물살이 빨라 건너기가 위험해졌다.

개울이 조금 옆으로는 폭포로 바뀌어 떨어지고 있어 물살에 휩쓸리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아 왜 자꾸 내게 폭포가 앞길을 막냔 말이다. 마추피추도 그렇고!!


누가 이런식으로 특별한 경험을 달랬냐고,,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 생각해보면 재밌는 경험이지만 정말 난감한 상황도 많았다. ㅜㅜ

한번은 물살이 너무 빠르고, 깊이도 어느정도인지 알수가 없어 그냥 건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살짝 나온 돌들을 점프하듯이 뛰어넘어서 건넜는데

미끄러지기라도 했으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 어떻게 다들 알고 이 길로 안 왔는지. 다른 길이 있나?

해는 저물어가고 구름은 멋져도 마음은 편치 않다.

정말 안 쉬고 몇시간을 걸어도 끝이 없었다. 행군도 이렇게 열심히 안 했는데 말이다.


근데 문제는 남아 있었다.

해가 저물었는데 전방에 물소리가 들릴때마다 조마조마했다. 해가 진 상황에서는 더욱 위험하기때문에

물을 만난다면 건너는건 포기하고 길가에 텐트를 치고 잤어야 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물소리만 들릴뿐 더이상 나오지는 않았지만 시간은 10시, 11시 계속 흘러갔다.


생각해보니 오늘 12월 31일이다. 읭?

아, 이렇게 땀에 쩔어서 수시간을 걷다가 새해를 맞이하는가 허탈했다.

참, 이런식으로 일부러 새해를 맞이하기도 힘든데 말이다. 이또한 좋은 경험이리라..하자.

12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한 시간내에 도착 못하면 잠시 쉬면서 새해를 맞이하기로 했다.


"띠리링 띠리링"


철퍼덕, 아이고.

우리 셋은 모두 길가에 엎어졌다. 어차피 누가 이 길을 지나가겠어 이 시간에.

그렇게 엎어진 채로 남반구의 하늘에서 은하수남십자성을 보며 다들 말없이 멍을 때렸다.


'남은 여행도 안전하고, 재미있게..'


이렇게 마냥 있을 수도 없고 다시 걸음을 서둘렀다.

저멀리 불빛이 보이는 것 같다. 발길을 더 재촉했다.

새벽 1시경 그렇게 도착한 캠핑장에는 이미 트레커들이 모여 해피뉴이얼을 날리며 파티중이었다. 해피뉴이얼은 무슨..

그렇게 텐트를 치고 짐을 풀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우리 나름대로의 축하를 했다.

이걸 용케도 이틀동안 많이 안 뭉개뜨리고 들고온 준걸이도 대단하고,

이 날을 위해 챙겨온 나름 값비싼(=평소 먹던거보다 조금 비싼와인과 함께 칼로리를 채웠다.


아, 벌써 한국을 떠나온지 294일째가 되는 날이었다.